공예배의 가치 살아가면서 무엇이든지 잃어 본 사람들만이 잃은 것의 소중함을 압니다. 별로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도 잃어 버리고 나서 보면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였던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들이 매주 드리는 공예배 역시도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매 주일 드리는 주일예배를 공예배라고 합니다. 주일이면 언제나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지난 주에도 그랬고, 금주에도, 그리고 다음주에도 예배는 계속될 것입니다. 작년에도 그랬고, 내년에도 그럴 것입니다. 10년 전에도, 10년 후에도 그럴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한 두번 빠져도 그 다음에 다시 드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면 어떨까요? 예배를 드리고 싶어도 드릴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코로나 19 초기에 그런 예가 있었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공예배의 가치를 재 발견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코로나19는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소중한 선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공예배는 성도들에게 생명을 공급합니다. 물을 떠난 물고기가 살 수가 없듯이, 공동체를 떠난 성도는 살 수가 없습니다. 각 개인 경건생활도 중요 하지만, 공예배를 통해서 공급을 받는 은혜는 또 다른 가치입니다. 시편 84편을 쓴 시인 고라 자손은 이 가치를 발견을 했습니다. 다윗 왕과 함께 압살롬의 난을 피해서 피신 할 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시 84:1, 2) 앞에서 말씀드린 것이지만 잃어 본 사람이 잃은 것의 가치를 알게 된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잃지 않고서도 말씀을 통해서 깨닫는 사람이 복 된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매일, 매주 예배를 드리는 분들은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들려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날마다 나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삶의 승리를 하는 것입니다. 예배 회복은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예배는 생명입니다.
공예배의 가치
살아가면서 무엇이든지 잃어 본 사람들만이 잃은 것의 소중함을 압니다. 별로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도 잃어 버리고 나서 보면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였던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들이 매주 드리는 공예배 역시도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매 주일 드리는 주일예배를 공예배라고 합니다. 주일이면 언제나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지난 주에도 그랬고, 금주에도, 그리고 다음주에도 예배는 계속될 것입니다. 작년에도 그랬고, 내년에도 그럴 것입니다. 10년 전에도, 10년 후에도 그럴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한 두번 빠져도 그 다음에 다시 드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면 어떨까요?
예배를 드리고 싶어도 드릴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코로나 19 초기에 그런 예가 있었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공예배의 가치를 재 발견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코로나19는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소중한 선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공예배는 성도들에게 생명을 공급합니다. 물을 떠난 물고기가 살 수가 없듯이, 공동체를 떠난 성도는 살 수가 없습니다. 각 개인 경건생활도 중요 하지만, 공예배를 통해서 공급을 받는 은혜는 또 다른 가치입니다.
시편 84편을 쓴 시인 고라 자손은 이 가치를 발견을 했습니다. 다윗 왕과 함께 압살롬의 난을 피해서 피신 할 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시 84:1, 2)
앞에서 말씀드린 것이지만 잃어 본 사람이 잃은 것의 가치를 알게 된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잃지 않고서도 말씀을 통해서 깨닫는 사람이 복 된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매일, 매주 예배를 드리는 분들은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들려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날마다 나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삶의 승리를 하는 것입니다.
예배 회복은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예배는 생명입니다.